1
아직 세롤이나 남은 필름이 있다. 네롤에서 한롤은 했으니 이제 남은 건 세롤 인데 남은 세롤을 언제 현상해야할까 생각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내일이 될 수 도 있고 앞으로 계속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조만간 할 수도 있을거다. 필름촬영은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필름도 사야하고 필름을 껴야하고 스물네방이나 서른여섯방을 찍고 나면 갈아줘야하고 또 현상해야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캔도 해야한다. 또 잘나왔다싶으면 스캔한 파일로 인화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스캔된 결과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도 필름으로 계속 찍어야 겠다 하는 작은다짐을 하곤 한다. 또 막상 촬영하면 귀찮아 지는건 어쩔도리가 없는 건가보다. 나중을 바라보고 지금의 일을 하곤한다. 나중의 것들이 좋음을 알기에 지금은 귀찮고 힘들어도 필름을 계속 사게되는 것처럼.
두가지의 세계관이 있다. 하나는 보이는 것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세계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세계관의 혼란속에서 내 마음 언저리에 꼭 자리하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기둥과도 같은 세계관이다.
하나의 세계관이 꿈틀 거린다. 그 세계관은 희망차다. 도전적이고 열정적이며 무슨일이든지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고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아픔들을 이겨 낼 수 있는 마음이 온전히 자리하고 있다.
하나의 세계관이 꿈틀 거린다. 그 세계관에 희망은 없다. 희망은 없지만 절망은 있다. 절망으로 희망을 본다. 수동적이고 냉정하다 무슨일이든 비관적으로 대처하며 힘이 약하다. 고난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 아픔들을 이겨 낼 수 있는 마음이 온전하게 무너진다.
세계관이 뒤 섞여 있다. 때론 하나의 세계관으로 기울고 때론 하나의 세계관으로 기운다. 그 기울임이 팽팽해지려는 듯 - 전쟁중이다. 아직 힘이 약한 하나의 세계관 속에 가고 싶다.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도 않다. 가기 싫기도 하지만 가고 싶기도 하다.
2
뭐입지 뭐먹지 뭐하지. 요샌 옷을 입으려고 옷장을 열적엔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기 보단 어떤 티셔츠를 입을지 고민한다. 그런데 그 티셔츠는 하나같이 흰색이고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같은 모양을 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흰옷은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뒤틀림이 다르며 각각의 늘어짐이 다르다. 흰옷을 뒤적뒤적 거리고 있는 내 모양이 웃기기도 하다. 뒤적뒤적 거리다 오늘은 이 흰옷을 입겠어 하고 고른다. 그 고른 흰옷은 어제 입었던 건지 그제 입었던 건지 한번도 입지 않았던 건지는 모른다. 그냥 오늘은 느낌상 이 흰옷이 좋겠다 하고 고르는데 또 그 생각이 어이가 없다. 일주일에 한번씩 흰옷을 빤다. 하얀셔츠, 하얀티, 하얀나시, 하얀, 하얗, 하얗게 생긴 것들을 몰아다 세탁기에 있는 '알뜰삶음' 기능을 이용해 두시간 안되게 빨래를 하는 데 그 시간속에서 그 옷들은 다시 태어난다. 하얗던 흰옷들이 삶음의 영역에서 더 하얗게 되어 나온 것을 대면할때면 어떤 쾌감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늘어짐의 길이가 길어진 것도 같고 뒤틀림의 틀림이 더 틀어진 듯해 보이고 더 줄어든 것도 같다. 다시 태어난 옷들은 다시 내 몸에 맞춰지고 또 늘어지고 또 맞춰지고 또 늘어진다. 뭐입지의 고민소비를 줄이기 위함으로 시작된 흰옷의 대열중대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고민은 고민의 소비영역을 줄이기는 커녕 또 다른 고민 소비를 창출했다. 근데 나 뭐라는 거지?
3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있다. 그 현실들을 매우 어려운 모양으로 만들어 졌다. 무엇하나 쉽게 얻은 것이 없는 듯 하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젠 그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을 눈에 보이게 아주 디테일하고 간결하게 작성할 생각이다. 아주 세밀하게 요밀조밀하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조목조목 따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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