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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춥다. 이곳에 오기전에 무언가를 많이 먹은 탓에 배는 불러 몸이 무겁고 정신은 점점 몽롱해진다. 배부르고 졸리고 으슬으슬하다.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카페들은 너나할거 없이 에어컨을 팡팡 틀어댄다.
언니가 보내준 라텍스 매트릭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잠자리에 든다. 오늘 아침에도 아니지 정오쯤에 일어나 라텍스의 기운을 한가득 끌어안고 일어나기 싫은 기분으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느릿느릿 일어나 잠들기전에 이불 옆에 갔다놓은 자리끼를 한모금 두모금 세모금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하고 어제 새벽에 보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남대문 꽃시장엘 갈까 카페에 가서 종일 있을까 영화를 보러 갈까 생각했다. 오늘은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저번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시간을 확인하고 나갈채비를 했다. 빨간책방을 틀었다. 저번에 듣다가 만 은희경작가님 편을 다시 이어 들으며 준비를 하니 금방이고 지나버리는 시간을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매번 똑같은 편을 듣고 또 듣고 다시 듣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듣는 기분에 빨간책방은 여러번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한번에 가는 버스를 검색했다. 집앞 정류장에 그런 버스가 있다는 것에 놀라고 서울은 참 교통이 편한 곳이구나를 다시 새삼감격하고 정류장에 걸어갔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는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차고지'라는 글자만 보여주었다. 그 외 다른 똑같은 번호의 버스는 차례차례 시간에 맞게 5대고 6대고 지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영영 영화를 못보고 말거라는 상상을 하며 5대고 6대고 지나간 버스에 올라 환승하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 되려 환승하고 가는편이 나았을거라고 환승버스에 오르면서 생각을 했다. 비록 30분 안되게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음에 나올땐 버스가 어딨는지 확인하고 나오리라 생각했다. 근데 그 버스가 아직도 차고지인걸 보면 그 버스는 분명 운영하지 않는 버스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니면말고.
영화를 혼자 본다는것이 매우 낯설을 때가 있었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 낯설음에 조금은 적응된 것이 아닐까 스치듯 생각을 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영화는 내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았고 배우, 영상, 음악, 내용 모든 것이 고루맞게 내 생각의 틈을 채워줬다. 특히 남자배우의 옷차림이 유독 맘에들었는데 참 예쁘게 입는구나 다음장면에서는 무엇을 입고 나올까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관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만날수도 있고 못만날수도 있었다. 만나면 좋을 것 같았고 못만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알바하기 전까진 시간이 있으니 저녁이나 먹자는 친구는 오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배가 고팠다고 아침을 먹고 종일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고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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