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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downy/말로그린사진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1

일년 가까이 모아온 동전들을 이제야 풀어주었다. 모아온. 이라고 말하기엔 적합한 언어가 아니지만 굴러다니고 있는 십원짜리 동전 오십원짜리 동전을 보면 아무생각없이 동전통에 툭 하고 집어 넣었고 백원이나 오백원짜린 가지고 다니는게 귀찮아 무조건 동전이 생겼다 하면 동전통에 모조리다 집어 넣었다. 모으자하고 모은것도 아니고 습관처럼 던져놓고 집어넣고 했던 행위가 오늘이 되어서야 내 통장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차를 끌고 은행엘 갔다. 뭐 카페도 가고 겸사겸사 볼일도 볼겸. 은행엔 항상 사람이 많다. 대기번호를 뽑고 열명 남짓 기다려야 했기에 가만히 앉아 대기번호판을 보며 내 번호가 뜨길 주시하고 있었다. 은행에 올때면 기다리지 않고 업무를 본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사연을 안고 돈을 입금하고 또 출금하고 또 대출 받고 공과금도 내고 다양한 모습으로 은행에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혹시 나처럼 봉투한가득 동전을 안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하는냥을 지켜봤지만 오늘의 동전 장사는 나뿐이었던 것 같다. 내손에 쥐어진 종이의 숫자와 대기번호판의 숫자가 동일해졌다. 이중종이가방을 해서 들고 왔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많이 살때 이중으로해서 봉투에 주듯이 봉투도 교보문고 종이봉투로 단단히 해서 들고 올 정도의 무게였다. 꽤 무거운 종이봉투의 실체를 느낀 은행직원의 눈이 커졌다. 이게 다 동전이냐고 묻는 말에 고개만 까딱까딱 해댔다. 동전을 세는 것도 오래 걸렸다. 동전을 세는 것은 기계지만 그 기계에 동전을 집어넣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각각의 동전을 셈하는데 동전을 세는 은행 직원이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얼마정도가 나올까 예상금액을 삼만원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불러주는 금액의 액수가 내가 생각했던 금액의 2배를 훨씬 뛰어 넘는 가격이라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놀랐다. 이 많은 동전들은 어디에서 와서 나에게로 왔을까 커피를 사먹고 남은 이백원이 모이고 책을 사고 남은 백원이 모이고 밥을 사먹고 남은 오백원이 모이고 할증이 붙은 택시를 타고 남은 오십원이 모이고 엽서를 붙이고 남은 십원이 모여진 동전들이 일년 넘게 내 동전통에서 갑갑했을 것을 생각하니 오늘 동전들을 풀어준것에 나름 뿌듯해 하고 있는 중이다.























2

아직 시작되어지지 않은 일들을 앞두고 있다. 아니 이미 시작되어진 걸 수도 있겠다. 이 세상엔 뭐든 행동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많다라고 하기엔 뭐하고 아마 대다수의 일들이 행동으로 부터 비롯되야 눈에 보여질텐데 그 행동으로 부터 얻어질 수 있는 대다수의 것들이 언제나 그랬듯 나에겐 벅차고 어렵기만 한 일들 투성이다. 시작하는것이 어렵기에 무엇이 되든 간에 남들보다 뎌디고 느리다. 아마 뒤집기 목가누기 걸음마도 늦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지만 이건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릴적 내 엄마 아빤 항상 바쁘셨다. 엄만 식당을 하고 있었고 또 장사가 꽤 잘되서 쉴틈없이 일하곤 했었다. 명동 칼국수라는 간판을 달고 칼국수 장사를했는데 그땐 왜 명동칼국수인지 명동이라는 지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우리 식당 이름은 명동칼국수라고 하며 다닌 것 같다.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식당 안에선 엄마랑 할머니가 만두를 빚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난 옆에서 소주병으로 만두피를 예쁘게 만들어 곧 잘 칭찬을 받았었다. 그 칭찬에 힘입어 매일이고 만두피를 열심히 밀었었다. 짬밥이 붙었을 때는 만두를 빚어 내가 만든 만두를 손님 상에 자주 자주 들여 놓았었다. 어릴적엔 그게 또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아빤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무원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마음에 매일을 성실히 일을 나가는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저녁 근무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 올 적엔 미제 치즈피자 미제 자동연필깍이 같은 물건들을 손에 쥐고 돌아와 두딸을 기쁘게 하는 일에 힘쓰기도 했다. 아침근무를 마치고 낮시간을 아빠와 보낼적엔 아빠가 그 당시 큰맘 먹고 마련한 스쿠터 앞에 자릴 잡고 동네한바퀴 돌아달라고 그렇게 때를 썼었다. 아빠가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아빠에게 온몸을 의지한채 달리는 그 바람의 맛이 참 좋았었다. 그리고 가끔은 오토바이를 움직이는 핸들에 내 자그만한 손을 놓고 아빠가 그 위에 큼지막한 손을 덮어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주곤 했었는데 내가 핸들을 움직여 오토바이를 이리저리 운전할 수 있다는게 어린마음엔 또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내 손을 덮은 아빠의 두터운 손의 무게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그 두꺼운 손의 무게가 가끔 생각난다. 어떤 안정감과 같은 감정의 무게, 지금의 난 그 감정의 무게가 그립다.

 


내 부모는 나를 가르칠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그럴 여유가 없었을 거다. 그런 여유없음에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교육은 꼭 시켜야한다는 엄마의 치맛바람에 엄마가 보내준 유치원을 하루만에 때려치고 가지않겠다고 때를 썼다. 내 기억이 맞다면 동네 길가에서서 엄마에게 가지 않겠노라 시위하듯 울어재낀 기억이 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영향도 크겠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깨우친다는 한글과 구구단을 나는 초2때 모조리다 깨우쳤다. 느려도 한참 느린 아이였고 지금에와서 생각하면 어디 모자란게 아니였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시계 보는 법도 한글과 구구단을 깨우치고 더 지나서야 알게됐다. 지금도 가끔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를 바라볼때면 한참이나 바라보고 나서야 몇시몇분인지를 인지할 수 있다. 진짜 어디 모자란가? 생각하지만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가끔 그런다고 했다. 근데 나 가끔이 아닌데...





















































3

절망중에 춤을 추겠노라 했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말속에 들어가 앉아 버렸다. 절망했고 지겨웠고 지루했고 소리쳤고 따져물었다. 이제 그만하면 안되겠냐고 그러면 안되겠냐고. 몰려오는 수만가지의 부정적인 생각들에 짓 눌려 나쁜 생각들을 몰아내는데 힘을 쏟았다. 그런 생각까지 하게되는 내 생각의 소용돌이에 그래 다시 또 바닥을 치는구나 바닥을 쳐도 제대로 쳐대는 구나 하고 나를 땅구더기로 쳐박았다. 제대로 꽂아 박았다.

어떤것에도 타협하지 않은 내 감정은 긍정을 밀어내고 끝없이 부정에 부정을 거렸다. 됐다고 일말의 희망도 없다고 아무것도 아무일도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것들을 흡수할 시기다. 흡수되어 질지 모를 일이라 난 무조건 행동해야 한다. 행동함으로 벌어질 일들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희망을 걸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희망에 넘어지고 절망에 넘어지지만 희망으로 또 한번 일어나야한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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