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나
타인
물론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고 나도 물론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 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 아니었을까 되뇌여 봤다. 나는 언제나 너에게 우리에게 타인이고 타자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너에게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는 모른다. 너는 그 모든것의 일부분만을 들어 그 부분만을 확대해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나는 너의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너의 느낌을 모두 알지 못한다. 아니 조금도 알지 못헀다. 너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없고 나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너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 될 수 없고 나의 경험은 너의 경험이 될 수 없다. 너는 언제나 나에게 타인이다.
어떠한 글도 그 확신을 나에게 줄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인증할 수 없는 것은 언어의 불행이다(또한 언어의 관능성이라 할 것이다.) 필시 언어의 노에마는 이러한 무력감일 것이다. 혹은 보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언어는 본성상 허구적이다. 언어를 비허구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측정 장치가 필요하다. 논리가 소환되고, 그게 안 되면 선서가 동원된다. R.B 밝은 방
2
언어를 채집해서
한장의 사진처럼
동네에서 20분정도를 걸어 역쪽으로 나간다. 마치 지하동굴처럼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오늘 책이 몇권이 들어왔는지 알려주는 표시판이 붙어있다. 주로 천권이 넘는 숫자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 작가들의 얼굴이 붙어 있는 레터링을 본다. 김숭옥, 신경숙, 기형도, 공지영, 조정래 작가 등등 작가들의 얼굴과 책속의 한줄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 꿈같은 대형 중고책방이 펼쳐진다. 매일을 들려도 지루하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벽 한쪽에 이런 레터링을 붙여 놨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 다는 것" 이 문구를 볼때면 절판된 책을 꼭 사야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집과 가까이 있었다면 아마도 매일 출근도장을 찍듯이 갔을 수도 있을 거다. 도서정가제다 뭐다 하는 통에 새책을 산다는게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중고책방을 가면 어떤 설레임을 동반한다. 내가 생각하는 그 책이 그 곳에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늘 그곳을 생각하게 하고 또 그 곳으로 이끈다. 가끔 아니 자주 새책같은 중고책을 발견한다. 최근에 인쇄되어 발행된 책도 간간히 본다. 그럴때면 책을 주르륵 살펴보고 책등, 앞면, 뒷면, 많이 바랬는지 낙서는 없는지 살펴보고 새책과도 같은 중고책을 들고 계산대로 간다. 이 중고책방을 와서 둘러보고 찾아보고 또 발견하는 행위에서 설레임뿐만 아니라 어떤 쾌감을 준다. 갖고 싶었던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의 상태가 아주 좋을 적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산다. 그렇게 산책이 몇달간에 열권이 넘어 버렸다. 물론 정가보다 반값에 가깝게 산책들이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다. 누가 그랬던가 책사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책장에 책등을 보이게 서있는 책들은 각각의 모습으로 서있다. 그 중엔 중고책으로 몇십권 가깝게 똑같은 책이 꾳혀 있는 걸 볼때면 아마 내가 작가라면 그렇게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책이 많이 팔려서 그 책들이 다시 중고서점으로 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책들은 크게 위치가 바뀌지 않고 그 자리에 꽂혀있다. 문학코너엔 한국소설, 일본소설, 역사소설, 어린이코너엔 만화로 된 동화책이 정말 많은 칸에 꾲혀 있다. 심리, 종교, 에세이, 시, 경영, 인문 책 코너 등등 그리고 오늘 들어온책 칸, 고객이 방금 보고 간책 칸, 고객이 방금 팔고 간책 칸, 1년이 지나지 않은 책 칸 등등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분류되어 나누어져 있다. 바로 들어가자 마자 있는 문학코너를 쭉 한번 둘러보고 방금 팔고간책을 쭉 둘러본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는 책칸으로 가서 상태가 최상인 책이 있나 한번 살펴본다. 그리곤 컴퓨터 앞으로 가 작가의 이름을 한번씩 쳐본다. 맨처음엔 꼭 이승우 그리고 김애란, 편혜영, 황정은, 신경숙, 김중혁, 김영하, 무라카미하루키, 줌파라히리, 오르한파묵 순으로 쭉 쳐보고 정말 운이 좋은 날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살 수 가 있다. 근데 그런날은 아무래도 드물다. 내가찾는 책은 거의 절판되었거나 잘 나오지 않는 책들 뿐이다.
책방 구석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 저번엔 살인자의 기억법을 두번에 걸쳐 가서 다 읽었다. 짧은 소설이고 가독성이 있는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지만 책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에서 정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책을 읽는 다는 것에서 어떤 보상심리를 느끼는 것도 같다.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었다. 그땐 그 자유란걸 당연시하며 소중히 여기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다닐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더 많이 누릴걸 하고 후회한다. 주로 일요일에 중고책이 더 많이 들어온다. 사람들은 주말에 와서 책을 많이 파는 것 같다. 일요일 오후즈음에 책방엘가서 책을 살펴본다. 평일 보다는 확실히 팔린 숫자가 많다. 천권을 평균적이라고 치면 주말엔 이천권, 삼천권까지도 본적이 있다. 가끔 같은 사람의 이름으로 좋은 책들이 대량으로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울적해 지곤 한다. 무슨 연유로 자신의 이름을 적으면서 까지 아끼던 책을 팔게 된건지 물론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팔 수도 있었겠지만 내 방에 꾲혀 있는 책들을 팔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기 까지 한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내책을 몽땅 파는 날이 올까 하고 생각 하지만 현재로선 아무런 책도 팔고 싶지 않다. 그 소중한 책들을 어떻게 팔까?
익숙하다. 익숙해진다. 익숙하다는 단어를 끄집어 내고 익숙하다- 내 뱉고 보니 정말 익숙하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집까지 걸어오는 길, 마트에 가는길 우유와 계란을 사서 돌아오는 그길, 자주 가는 카페에 가는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길, 역으로 가기위해 차도로 가는길, 도림천 옆으로 마련되어진 길로 가는 길 마저도 이젠 익숙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길, 버스를 타고 가는길.
서울역에서 남대문으로 남대문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가는길. 광화문에서 서촌으로 서촌에서 부암동으로 부암동에서 북촌으로 북촌에서 다시 광화문으로 오는 길이 익숙하다. 몇년전을 생각한다. 서울 태생의 한 친구의 뒤를 쫄래쫄래 돌아다니면서 여기로 가면 이곳이 종각인지 저기로 가면 저곳이 을지로인지도 모를 적에 그 친구가 없인 어디가 어딘지 몰랐을 때를 생각한다. 익숙해짐이 어려워진다. 익숙해지는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 그 친구가 우리를 삼청동으로 시청으로 띵크커피로 광화문 교보문고로 통의동 가가린으로 이끌었던 때가 그립다. 갑자기 그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쫄래쫄래 따라다니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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