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그런 날 있잖아. 옷을 입은채 물에 빠져버려서 물 밖으로 애써 나왔는데 물먹은 옷들이 너무 무거운거 마치 그런 느낌의 내 몸뚱아리, 머리가 아픈데 아픈곳이 어디쯤인지 몰라서 막 여기저기 눌러보고 눌러봐도 아픈데가 어딘지 모를 때,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아침에 눈을 떴는데 세상에 나 혼자인것 처럼 느껴질때 근데 그게 오전, 아침이라는 것에 더 서러울때 그런 서러움과 비어있는 느낌이 감당이 안될 때,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는 것 마다 악몽일때 악몽에 잠이 깨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악몽을 꾸었을 때, 감정이 내 감정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울때, 힘내자 괜찮다 하고 다짐했는데 뭐든 해보자 했는데 아무것도 할 힘이 없을때. 너무 한꺼번에 몰려온 어려움 때문에 잠만 자고 싶을 때.
그런데 있잖아. 온갖 어렵고 힘든 감정들이 작은 배려 하나로 씻은듯이 씻겨 내려가는거 그런거 느껴 본 적 있어?
2
수풀림
베짱이
영화를 보면서 자주 웃었다. 문득문득 울고 싶을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오랜만에 좋은영화를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공짜영화라서 그런 걸수도 있겠다. 전시를 보거나 책을사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그 외 다른 것에 돈을 쓰는건 아깝지가 않은데 영화관가서 영화를 보는건 왠지 모르게 아깝다고 느껴진다. 영화인들이 들으면 몰매 맞을일이지만 사람마다 기회비용은 다른 거라고 주장하고 싶다. 근데 괜찮다. 내가 아는 신길동고리땡녀는 영화를 못보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것 같이 영화를 보러 다닌다. 얼마나 보러 다니냐면 M영화관 vvip를 역임하고 있다. 베짱이 생활에 익숙해 져서 그런지 일은 안하면서 하루하루 하는일이 많다. 그냥 집에 있다가도 천천히 준비하고 집밖을 나간다. 전시도 봐야하고, 서점도 가야한다. 중고책방에 좋아하는 작가책이 있나 살펴봐야한다. 읽고싶은 책을 발견하면 마련된 자리에 앉아 조금씩 조금씩 읽기도 한다. 가끔 번화가 쪽에 나가면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새로운 옷이 나왔나도 본다. 집에오면 방을 구석구석 깨끗히 닦고 밥도 지어 먹는다. 밤에는 동네친구를 마중나가면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한다. 그리고 주말엔 등산도 가야하고 교회도 가야하고 친구도 만난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또 다른 일주일이 온다. 동네친구는 개미같이 일한다. 너무 빨리 개미가 된 것 같다고 투닥투닥 거린다. 베짱이인 나를 보면서 부러워 하는 눈치다. 개미가 베짱이를 부러워 하지만 베짱인 개미가 (가끔) 부럽다. 나를 부러워 하는 이가 많으면 좋은건가 생각했다. 계속 베짱이여도 될까 늘상 생각하지만 계속 베짱이일순 없다고 결론을 짓는다. 그냥 결론만 짓는다.
3
해환이
해상이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나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역사를 다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 본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쫒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이상 [이런 시]
그냥 시를 썼을 뿐인데 마음에 사무치는 말, 그저 그런 것들을 표상으로 들어 낸것인데 그 말이 그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 시대에는 이방인들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것들. 시를, 사진을, 회화를, 문학을, 음악을 죽이는 이방인이 아닌 나와 우리들이 이방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4
개미들의
협찬
개미들 덕분에 내 발이 따뜻하게 감싸진다. 어떤 감사를 말해야 할까 생각하지만 그냥 여기에 쓰련다. 고맙다고.
[컨버스 협찬 : 무지개미지음 / 직각양말 협찬 : 조교개미봉희.]
'ulTradowny > 말로그린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명히 인생은 불공평하다. (0) | 2014.11.05 |
---|---|
와, 이미. (0) | 2014.10.27 |
단조로운 일상. (0) | 2014.10.17 |
Gangwon. 연어의 바다 (0) | 2014.10.13 |
소설의 위안. (0) | 2014.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