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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은
나다
"도넛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느냐, 존재로 받아들이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이며, 그러한 일로 인해서 딱히 도넛의 맛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단조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그에 뒤지지 않게 다양한 삶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젊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앞에 두고 있지만 직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경험하지 않는 것 보다 경험 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마도 도움이 되어 줄 순 있겠다. 도움이 되어줄 뿐 그냥 그 뿐이다. 축적되어진 경험을 다시 재경험하고 또 재경험할 때 오는 어떤 익숙함 낯설지 않은 감각이 재경험을 더 잘할 수 있게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실수는 있기 마련이다.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생긴 기분이다. 그런데 그 구멍이 본래 있었던 구멍인지 재경험을 겪으며 생긴 구멍인지 아리송하다. 뚫린 도넛이었을까 막힌 도넛이었을까.
가슴 한가운데 생긴 구멍이 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내가 한일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선택의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이고 타의에 의해서라고 변명해도 그건 그냥 내가 저지른 일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어지질 않는다. 앞으로 걷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고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고 반대편의 전철을 타는 것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고 밥을 먹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고 사진을 찍지 않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고 비타민을 챙겨 먹지 않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다.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냐 존재로 받아들이냐는 내가 결정하면 된다. 구멍으로 인해서 맛이 변하진 않지만 모양은 변한다. 그래도 공백이든 존재이든 도넛은 도넛일 뿐. 그러므로 도넛은 나다.
구멍이 조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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