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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downy/보통의 책장

식물들의 사생활.








1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랑이 유발되고 고백되고 실연되는 특별한 상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을 그 때문이다.








2

남자가 이미 결혼을 했다거나 가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상의 사정이었고, 현실의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상과 현실을 떠나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없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되풀이 질문하는 대신 그는 그녀를 향해 팔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의 팔 속으로 들어갔다. 몸이 말했다. 몸이 가장 정직하고 가장 확실하게 말했다. 몸보다 정직한 말은 없었다. 몸보다 확실한 말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에서 존재는 상황을 초월한다. 존재를 규정하는 씨줄이 지워진 때문이다. 씨줄과의 연합 없이 날줄만으로 존재의 좌표가 그려질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의 말대로 그곳은 현실의 어딘가에 '있는' 곳이 아니었고, 지상이 아니었다.










3

어떤 책에선가 행동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고, 상황 속에 들어가 있거나 들어 있지 않은 진실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책에는 동기가 사랑이면 행동은 선이다. 하고 쓰여 있었다. 그 문장을 나는 동기가 사랑이 아니면 그 행동은 선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었다. 동기가 사랑이면 아무리 나쁜 행동도 선이고 동기가 사랑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행동도 선이 아니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 상황주의자의 특별한 주장을 정언적인 어떤 명령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그 상황주의자의 특별한 주장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받아들였다. 동기가 사랑이라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 사랑은 모든 상황과 문제에 대한 유일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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