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뒷모습은 얼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눈동자이기도 하고, 마주보면 이야기할 때의 손짓이기도 하고, 또 놀랍게도 뒷모습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게 뒷모급은 잊히지 않는다. 출연자는 두 명이지만 한 사람만 그것을 기억 하기 때문이다. 그것는 온전히 그의 것이다.
2
나연이 평소보다 좀 낮은 목소리로 묘비에 새겨진 글을 읽었고 명섭이 그것을 통역했다.
"한마디 말 그가 사랑했던 것은 '좌절'/ 하나의 색 그가 사랑했던 것은 '회색'/ 하나의 형태 그가 사랑했던 것은 '얼굴'/ 하나의 질료 그가 사랑했던 것은 '먼지'/ 하나의 장소 그가 사랑했던 곳은 '베를린' 그래도 그는 그 사랑을 끝낼 수가 없었네"
3
영상은 사라져가고 수연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지난가버린 것이 인생이고 누구도 그것을 수선할 수 없지만 한가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건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상처를 기억하든, 상처가 스쳐가기 전에 존재했던 빛나는 사랑을 기억하든. 그것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밤하늘에서 검은 어둠을 보든 빛나는 별을 보든 그것이 선택인 것처럼.
공지영 [별들의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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