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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downy/보통의 책장

듀안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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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한 대낮의 모텔이 오히려 바깥보다 더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 빛이 알맞게 침대 위에 떨어지고, 엷은 백색 커튼 사이로 내비치는 바깥 풍경이 또렷해서 오히려 더 자극적이었다. 옷을 벗으려다 말고 마이클은 침대 건너편 카메라로 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카메라를 장전하고 그리고 오늘이 우리를 확실하게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아주 부드럽게 셀프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정오의 정사는 그렇게 끝났고, 그리고 채 밤이 오기 전에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났다. 사진이 우리의 오늘을 기억했겠지 하면서. 마이클은 2년 전 그때 찍은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1974년 5월 8일 정오, 그때를 생각한다. 풍성한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 걸터앉아 사라와 사진 한 장을 박았지. 옷을 채 벗지 못한 나는 사라가 등뒤에서 뜨거운 젓가슴을 밀착시켜 왔을 때 침대 쿠션만큼 그녀가 젓가슴이 푹신하다는 생각을 했지. 셀프타이머를 작동시키고 달려오는 나를 그녀가 더욱 팔목에 힘을 주어 안았을 때 순간 카메라를 쳐다보아야 할지, 그녀를 안고 침대로 쓰러져야 할지 난감했었지. 그런데 그 순간 카메라가 말을 건네 왔었지. 이제 끝났으니 볼일 보시라고. 거기까지가 생각났다. 그는 천천히 사진 밑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이 사진이 보증한다. 분명히. 우리의 좋은 관계가 있고, 그녀가 나를 안고 있고, 우리가 너무도 행복해 보이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감싸던 오후의 햇살이 있다. 그런 일이 분명 있었으며, 그녀가 분명 나를 사랑했었다. 이 사진은 그때의 우리를 보증한다."




마이클은 펜을 놓았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헤어졌을까. 헤어진 이유는. 정말 그랬을까. 과연 우리는 사랑했 을까. 우리가 그때 진정 행복했을까. 정말 좋은 관계였다면 왜 그날 헤어졌을까. 이 사진은 우리의 무엇을 보증한다는 말인가. 사진이 보증 하는 것은 1974년 5월 8일이었다는 사실뿐이다. 아무 것도 보증하지 못한다. 우리는 사랑도, 행복도, 좋은 관계도 보증하지 못한다. 이 사진 속의 모든 이미지는 진실과 거리가 너무도 먼 것이다. 그날 나의 기억은 그녀가 호텔 모퉁이를 돌아설 때 흔들었던 손이다. 카메라가 진실을 찍는다는 것은 실패를 예정한 시도이다. 나는 이제 거리를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진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 있으며, 그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해 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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