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뭐, 발툽을 깎는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건 좀 사적인 거니까. 발톱이 발에 붙어 있으면 그건 괜찮아. 하지만 일단 떨어져 나가면 그건 쓰레기잖아. 예를 들어, 사람 머리에 난 머리카락을 보는 것하고 욕조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는 건 다르잖아."
"그런데 왜 발톱을 깎는 게 섹스를 하는 것보다 더 친밀한 거야?"
"섹스를 하는 상대는 그 앞에서 발톱을 깎아도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일 뿐이야"
어쩌면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면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발톱 깎기는 그 아름답지 못한 면이 사람의 관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적이다. 몸단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아침을 먹으러 나타나려면 신뢰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사생활은 친정한 마음 또는 동정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면이 담겨있다. 사생활은 우리의 노출된 순간의 기록이다.
2
삶의 사적인 부분은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실제 이상으로 과시하려고 한다. 이사벨이 수전 손택과 관련된 속임수르 드러내기를 꺼렸던 것은 그것이 그녀의 독서만이 아니라 그녀의 전체적인 지적 눙력, 심지어 도덕적 능력에 관한 나의 관점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남들에 관해 어떤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그들을 두 번 다시 원숙한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곤 한다. 사소한 것 한 가지, 예를 들어 신체적 기형이나 고약한 습관, 즉 젖꼭지가 하나 더 있다거나 자기성애적 질실 취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 이름이 언급 될 때마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버리곤 한다.
3
"오늘 아주 유쾌한 생각을 했어.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납품은 이루어지지 않고 전화는 울려대는 상황이었지. 나는 모든 것에 결국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하고 물어볼 수 있는 면이 약간씩은 있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끝내지 않았어.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내 차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나는 돈이 충분치 않아.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우리 부모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마음이 아주 편해져. 이게 내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이 될 거야."
그러나 그런 선언을 하자마자 다시 회사에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고, 그 불교적인 지혜는 찾아올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늘 유동적이며, 이전 자아의 유물이 나중에 온 자아의 질서정연한 가정들을 방해한다.
4
[i] 특별하지만 평범한 일 [의자에 앉거나, 자식을 낳거나]을 하는 것.
[ii]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살인을 하거나, 복권에 당청되거나]을 하는 것.
[iii] 평범하면서 평범한 일[포테이토칩을 먹거나 우표를 사거나]을 하는 것.
5
이사벨의 정신 기능 가운데는 공감이라는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우리의 차이를 존중하자는 슬픈 결정으로 만족해야 하는 영역들이 있었다. 왜 슬프냐고? 차이를 존중한다고 으스대며 말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 따라서 솔직히 말하면 논리적으로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존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악하지도 못하는 것의 가치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단 말인가?
알랭드 보통 [너를 사랑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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